Study/[BOOKs] 리뷰

[그림자 자국] 드래곤라자 천년 이후 이야기

CodeNook; 2024. 7. 1. 13:47

그림자 자국

작가 이영도

출판 황금가지

발매 2008.11.27

 

이 책을 읽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줄곧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놨으면서 기회가 없어 읽질 못하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이토록 애타게 책을 기다렸던 이유는 작가가 이영도이기 때문이다. 이영도 작가의 작품은 단편을 제외하고 모두 읽었다. 그중에서 '드래곤라자'는 나의 판타지 소설 입문서 였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림자 자국'이 '드래곤 라자' 천년 이후의 이야기라니 당연히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영도 소설의 특징과 매력

대개의 이영도 소설이 그렇듯 '그림자 자국'도 독자들에게 불친절하다. 무슨말이냐 하면, 전후 설명없이 고유명사를 마구 늘여놓는다.(그/자의 예를 들자면, '프로타이스하다' 등등...) 처음 읽는 사람 입장에선 앞에서 무언가 빠트렸나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물론 처음 읽었을때 이해못할 고유명사나 상황들은 내용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이영도 소설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라 볼 수 있다.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나간 독자라면 그것이 해소되면서 재미를 느끼겠지만, 아무래도 도입부에서는 내용이해가 더디기 때문에 몰입이 어려워 진다. 사실 나도 도입부를 읽을때 내용의 갈피를 잡지 못해 몰입이 힘들었고, 약간의 지루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지루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도입부만 넘어서면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고 독자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나 역시 중반 이후부터 주체할 수 없이 책에 빠져들어 결국 앉은 자리에서 400쪽 분량을 읽어버렸다.

'드래곤 라자'와의 연결 고리

'그림자 자국'이 '드래곤 라자' 천년 이후의 이야기인 하지만 사실 서로 독립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드래곤 라자'를 읽지 않아도 내용이해에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드래곤 라자'와 후속작 '퓨처 워커'의 인물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아무래도 전작을 읽어본 사람들만의 것이다. 애초에 이 소설 자체가 '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 독자들에 대한 팬서비스 측면이 강한만큼 당연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달라진 어투와 독특한 분위기

'그림자 자국'은 이영도의 전작과는 달라진 어투가 눈길을 끈다. 그 이전까지 이영도의 작품의 서술자의 어투는 대개 진지하고 다소 딱딱한 느낌이 강했다.('드래곤 라자'의 1인칭 주인공 시점도 초반에는 가벼웠으나 후반으로 갈 수록 철학자의 독백같은 진지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그림자 자국'에서는 '~했습니다, ~하지요'하는 식의 보다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하면서 마치 누군가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이러한 어투 때문에 심각한 장면에서도 그저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며 '그림자 자국'만의 무겁고도 가벼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판타지와 현대의 조화

'드래곤 라자' 이후 천년이 지나 인류가 칼과 마법이 아닌 총과 대포로 전쟁을 하는 모습 역시 흥미로웠다. 드래곤과 현대식 전투기가 맡붙는다면 승자가 누구일지 판타지 소설 독자라면 한번쯤 가져봤을만한 공상이다. '그림자 자국'에서는 '퓨처 워커'에 등장했던 드래곤 아일페사스와 비록 전투기라고 부르기도 조야한 수준이지만 어쨌건 인류의 비행기가 격돌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전작에서 말을 타던 엘프 이루릴이 바이크와 열기구를 타는 장면도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도 바이서스의 국왕이 마법검 '프림 블레이드'를 꺼내들고 바이크 '퍼시발(!)'을 탄채 드래곤에게 돌진하는 장면이 압권이라 할만하다.

일러두기의 중요성

일러두기

* 작품의 각 문단 번호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배치되었습니다.
* 작품에 사용된 단어 중 일부 고유명사 등은 읽으면서 설명이 되도록 처리되었습니다.
* 본문에 사용된 가름 그림은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변화가 있습니다.

▲ 이 일러두기를 미리 숙지해 놓지 않는다면 작품의 이해가 힘들어진다.

 

 

 

그렇지만 '그림자 자국'의 가장 큰 흥미 요소는 바로 책의 서두에 있는 '일러두기'이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때 놓치고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 '일러두기'이지만 '그림자 자국'을 읽을때 이 일러두기를 유념해 두지 않는다면 중반 이후의 내용 이해가 어려워진다. 나는 우연찮게 먼저 일러두기를 읽었는데 처음엔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후에 생각보다 큰 의미를 지닌 것을 알고 몇번이고 앞으로 와서 다시 확인하곤 했다. 특히나 글을 나눌때 사용했던 '가름그림'의 변화를 놓친다면 내용이해가 불가능하다. 단순히 그림의 명암을 달리한 것만으로 글로 몇줄을 써도 모자를 묘사를 가능케 한다. 가름그림과 함께 나오는 문단번호 역시 후반부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 나는 처음에는 이를 잘 몰라 결말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리뷰를 읽다보니 이러한 가름그림이나 문단번호 변화의 기교가 마치 독자들을 약올리는 듯하여 맘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런 기교가 단순히 이해를 어렵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설의 주제를 강조하는데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프로타이스: 반항적인 매력의 드래곤

▲ 책 표지를 장식한 춤추는 성좌 프로타이스

 

수집한 보물을 레어가 아닌 자신의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녀 춤추는 성좌라 불리는 프로타이스는 반항기를 타고난 청개구리 같은 캐릭터이다.

읽으면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드래곤인데 '인물'이란 단어가 맞을지?)은 단연 '춤추는 성좌 프로타이스'이다. 드래곤 답지 않게 마치 말 않듣는 청개구리 같이 행동하는 이 녀석은 자칫 밉상이 되기 쉬운 성격을 가졌으나 오히려 호감을 주는 강력한 매력을 보인다. 약간 가벼워 보이는듯 하면서도 소설에서 절대 무시못할 존재감을 표현하는 덕에 프로타이스는 표지에 출연하는 영광(?)까지 얻었다.

어쨌든 결론은 '범인은 영주의 아들이다'

 

 

P.S. '그림자 자국'도 나왔으니 다음에는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를 잇는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